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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순의 해외 칼럼] 가난,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우리의 미래

하나님의 섭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 데 도움을 주어 왔다.

중동과 동유럽 곳곳에서 전쟁이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끔찍한 폭력적 분쟁들은, 사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절망, 의심, 그리고 좌절과 같은 조용한 전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 속에 갇혀 있으며, 그 가난은 우리 하늘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결여된 가혹한 에너지 정책들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우리 모두를 위해 사랑과 풍성한 자원을 주셨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

 

세계 빈곤 지역에 사는 수억 명의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과 세대 간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가혹한 포획 전쟁과도 같다. 사헬의 어느 마을이나 비하르의 슬럼가에서는, 새벽 전에 전쟁이 시작된다. 여성과 아이들이 종종 오염된 물을 긷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들의 하루는 작은 밭에서의 혹독한 노동으로 이어진다. 밤이면 나무, 숯, 혹은 가축의 분뇨를 태우는 유독한 연기로 가득 찬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요리를 위한 유일한 연료다. 이런 세상에서는 세탁기를 갖는다는 것은 우주여행과 다름없는 꿈이고, 집 안에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세계에나 존재하는 기적이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하루를 버티며, 경제적 도약으로 이어지는 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혼을 짓누르는 어둠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때때로 멀고 추상적인 관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거대한 진실이 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과학과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도록 섭리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질서 있고, 합리적이며, 탐구 가능한 우주의 근본이 되신다. 혼란스럽거나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질서와 이성을 가지신 창조주에 대한 믿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약인 과학혁명의 지적 원동력이었다.

 

아이작 뉴턴은 이렇게 썼다. “태양과 행성, 혜성으로 이루어진 이 가장 아름다운 체계는 지적이고 강력한 존재의 계획과 지배로부터 비롯되었을 뿐이다.”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신의 연구를 명백히 제사장의 사명으로 보았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자연의 책을 다루는 우리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려 깊어야 합니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에서부터 전자기학의 비밀을 밝혀낸 마이클 패러데이에 이르기까지, 그 이야기는 동일하다. 그들의 신앙은 과학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움직이는 엔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그것이 그들의 지혜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은 풍성한 자원이 가득한 세계를 주셨으며,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발견자들과 그 법칙을 활용하는 발명가들에게 능력을 주어, 점점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발전된 문명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유럽의 부유한 도시들과 콩고의 가난한 마을들 사이에는 이토록 커다란 격차가 존재하는가? 그 원인은 하나님의 공급 부족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잘못된 정책들 때문이다. 세계는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제도가 그 자원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인도적 관점 없이 만들어진 반인본주의적 에너지·기후 정책이, 서방 세계와 가장 뒤처진 지역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가장 크게 악화시켰다.

우간다의 어느 젊은 여성은 유럽 관료가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서는 안 된다. 방글라데시의 어느 어머니는 뉴욕의 기후운동가들이 LPG 수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소똥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책들은 과학적 진보도, 인도주의적 관심도 반영하지 않는다.

 

세계 기후정책을 이끄는 유엔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지구가 위기라는 허구적 이미지보다 건강하고 번영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더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만든 빈곤을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 투입되어야 할 전쟁터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겠다는 우리의 헌신은 추상적인 종말론적 경고나 이념적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정책을 지지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이것은 저절로 나아지기를 바라는 수동적이고 감상적인 희망이 아니다. 이것은 도덕적 명확성과 지적 용기를 제공하는 능동적이고 강인한 확신이다. 극심한 빈곤에 처한 사람들도 서구 세계에서 몇 세대 전 빈곤을 끝낸 바로 그 화석연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확성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삶을 개선해 온 전통적 에너지의 지속적 확대를 지지한다는 뜻을 국회의원들과 지역 대표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용기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뉴턴과 케플러를 통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 그 동일한 섭리는 우리가 가장 가난한 이들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도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사야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므로,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칼럼은 2025년 11월 20일 미국 The Patriot Post(www. patriotpost.us)에 처음 게재되었으며 미국 이산화탄소연맹 회원인 박석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필자와 협력하여 번역 및 수정했다. 박석순 교수는 현재 세계지성인 재단(Clintel) 한국 대사, 자유환경포럼 대표, 유튜브 박석순의 환경TV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