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행범 명예교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한 한 진의는 폴리스(polis)의 다스림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폴리스(polis)의 다스림이 politics였다. 이 도시국가는 오늘날 “지방”이란 관념으로 대치된다. 근대에 이 지방이 국민 국가(nation)로 융합되면서 이제 지방 자신만이 아니라, 지방과 다른 지방, 또 지방과 국가라는 관계가 중요해지자, 이제 인간은 이 단위들 사이의 조정을 다루는 ‘협동하는 동물(zoon koinonikon)’이란 국면을 추가로 요구받게 된다. 여기서 지방 및 지방 권력이 먼저 존재한 뒤, 이것이 봉건시대에 확실히 고착되고 난 뒤, 근대 국가로 통합해 간 과정은 뚜렷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봉건 체제를 충실히 거치지 않고 전근대적 왕조 체제에서 지내다 식민지 통치로 갑자기 직면한 근대, 그리고 자력에 의하지 않고 얻은 해방, 건국, 그리고 6.25 전란을 불과 수년 사이에 다 거친 상황에서 정말로 탁월한 정치적, 경제적 지도자들 덕분에 근대화 그리고 바로 현대화로 이어진 압축적 과정이었다. 여기서 논의 초점은 이것이 지방자치에 준 함의다
사상전쟁은 체제와 이념전쟁이며, 구체적으론 용어전쟁으로 표출된다. 우파사상의 본질을 흐려놓는 용어에 ‘중도’가 있다. 우리는 중도를 우 혹은 좌 사상에 비해서, 좋은 사상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중도적 인사라 하면, 이념에 치우지지 않은 사람으로 좋게 본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도 이상하다. 이념은 사상이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은 이념이 없다는 것과 같다. 이념이 없다는 것은 사상이 없다는 말이다. 사상이 없으면, 추구하는 체제도 없다. 이념이나 사상은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좌우 사상 모두가 국민을 잘살게 하는 방향이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념이 없으면, 좌나 우 방향에 대한 확고한 소신없이, 바람따라 표류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상구도를 파괴하는 개념의 용어가 ‘중도’다. 마치 좌와 우의 중간에 있는 사상이라는 의미를 준다. 중도가 ‘평균값’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므로, 인기있는 용어다. 중도의 어원은 불교다. 부처님이 해탈하시고, 먼저 설파한 내용이 ‘중도’다. 불교에서 중도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중간값이 아니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진리의 길로 가라는 의미다. 극단은
좌파 진영에서 우파 활동가를 과격한 파괴주의자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한 용어가 ‘뉴라이트’다. 뉴라이트의 이미지는 거의 히틀러급이다. 한 단어로 우파 활동가를 문제아로 만드는 강력한 무기다. 선전과 선동에는 원칙이 있다. 단순하고, 감성에 호소하고, 반복해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면, 거짓도 진실이 된다. ‘뉴라이트’는 좌파 진영에서 우파 인사를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단순하고, 감성적이고, 반복함으로써 진실이 된 용어다. 뉴라이트란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은 우파 시민단체에서다. 우파진영과 우파 정치권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이 보편적인 시절이었다. 이를 쇄신하자는 의미에서 ‘뉴라이트’란 용어를 들고 나왔다. 이름 그대로 의미다. ‘라이트’ 즉 우파진영의 이미지가 안좋으니, 이제 우파도 쇄신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새롭게 거듭나자는 의미다. ‘새로운 우파’ 즉 ‘뉴라이트’다. 뉴라이트 이름으로 시민단체가 만들어지고, 정치권에도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즉 뉴라이트는 특정 시민단체와 우파 정치권이 들고 나온 슬로건이었다. 당시엔 그냥 라이트가 아닌 뉴라이트로 세력화하는 개관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뉴라이트는 과격한 우파인사를 지칭
자유사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우파’다. 반대 개념으로 ‘좌파’가 있다. 자유는 우파로 지칭되고, 평등은 ‘좌파’다. 그런데 우파를 비판할 때, 쓰는 용어가 ‘극우’다. ‘극’이란 용어가 주는 의미는 부정적이다. ‘극우’는 극단으로 치우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사상 시장에서 용어는 강력한 무기다. 좌파진영에서 우파를 비판하는 강력한 용어 무기를 발명했다. 그러나 의미를 살펴보면, 본질은 없고 껍데기 뿐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극좌’는 존재하되, ‘극우’는 존재할 수 없다. 우파, 즉 자유사상의 기본은 개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개인자유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자유사상은 개인자유를 기본으로 하기에, 집단적으로 강제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개인자유는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와는 화합할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다. ‘극’이란 용어는 좌든 우든, 사상을 현실 체제로 만들기 위해선 집단적 강제 밖에 없다. 좌 사상은 본질적으로 개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 목표에 따라 개인이 일사분란하게 따라야 한다. 집단적 강제 방법이므로, 좌 사상은 ‘극’이란 수단이 필연적이다. 좌 사상을 실
사상 진영을 나눌 때 사용하는 용어가 ‘보수와 진보’다. 우파진영을 ‘보수’라고 하고, 좌파를 ‘진보’라고 한다. 용어에서 우파진영은 이미 졌다. 우파 사상을 설명하기 전에, 사상 경쟁에서 졌다. 보수가 주는 어감과 진보가 주는 어감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계층에겐 진보가 더 매력적이다. 보수란 늙은 꼰대의 어감을 준다. 보수란 말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상대 진영인 진보 용어가 훨씬 매력적이기에 문제다. 사상전에서 본질의 경쟁을 시작하기 전에 진영 이름에서 상대방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사상 용어는 영어에서 출발했다. 보수는 영어의 ‘conservative’를 번역했다. 대척점에 있는 좌파 진영의 영어 표현은 ‘liberal’ 혹은 ‘radical’이다. 보수주의는 철학사에서도 오랫동안 사용된 용어이므로, 원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수란 용어는 사용하는게 낫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이름을 ‘진보’라고 하지 말자. 영어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번역은 ‘급진’이 옳다. 혹은 ‘혁명’도 좋다. 보수도 진보한다. 보수는 변화를 싫어 하는게 아니다. 보수의 의미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만들어진 ‘자연적인 질서’를 중요시하자는 의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인이다. 북한 주민이 탈북하여 한국에 오는 이유도 자유때문이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으나, 한국에는 자유가 있다. 자유는 체제를 통해 보장된다.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 혹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가치관에는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 정의, 공평 등이 있다. 개인마다 이러한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강도는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 마음 깊숙이에 간직하고 있는 가치관도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으로서 공유해야 할 가치는 ‘자유’다. 대한민국 체제의 정체성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유 가치를 가지는 국가는 한국뿐만 아니다. 미국과 일본도 자유 가치를 가진 국가다. 즉, 자유 가치는 한국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아니고, 자유 국가들이 공유하는 이념이다. 그래서 현대 시대에 세계를 크게 자유 진영과 반자유 진영으로 나눈다. 반자유 진영이란 자유 가치보다 다른 가치, 즉 평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 집단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대표적이고, 가까운 북한도 그들만의 공동체이다. 이제 시대는 민족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사상 혹은 가치로 국가가 세워진다. 우리는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국가에 살고 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