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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유 분권과 지방 자치 - 대한민국 지방자치제가 필요한가?

 

<서평 - 김행범 교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한 한 진의는 폴리스(polis)의 다스림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폴리스(polis)의 다스림이 politics였다. 이 도시국가는 오늘날 “지방”이란 관념으로 대치된다. 근대에 이 지방이 국민 국가(nation)로 융합되면서 이제 지방 자신만이 아니라, 지방과 다른 지방, 또 지방과 국가라는 관계가 중요해지자, 이제 인간은 이 단위들 사이의 조정을 다루는 ‘협동하는 동물(zoon koinonikon)’이란 국면을 추가로 요구받게 된다. 여기서 지방 및 지방 권력이 먼저 존재한 뒤, 이것이 봉건시대에 확실히 고착되고 난 뒤, 근대 국가로 통합해 간 과정은 뚜렷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봉건 체제를 충실히 거치지 않고 전근대적 왕조 체제에서 지내다 식민지 통치로 갑자기 직면한 근대, 그리고 자력에 의하지 않고 얻은 해방, 건국, 그리고 6.25 전란을 불과 수년 사이에 다 거친 상황에서 정말로 탁월한 정치적, 경제적 지도자들 덕분에 근대화 그리고 바로 현대화로 이어진 압축적 과정이었다. 여기서 논의 초점은 이것이 지방자치에 준 함의다. 한국 역사의 중세 존재 논쟁은 차치하고, 중세를 거의 월반한 후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순간 이동해 있는 축복의 이면에 큰 비용이 하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방,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 자유라는 것을 학습할 겨를도 없이 조선 상민이 갑자기 상투만 자르고 돌연 민주 시민으로 행세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왕 밑에서 통치받는 백성 노릇은 겪은 바 있으니 국민 노릇은 그럭저럭 피동적으로 따라가지만,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치’는 여전히 미숙하다. 그래서 한국 지방자치는 진정한 자치가 아니라, ‘전국을 행정권역으로 구분하여 다스리는 중앙집권체제’쯤이라는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좋은 제도라 여겨져 초기 헌법에 실린 지방자치가 상당 기간 시행되지 못한 데는 이런 필수적 의식 기반의 부재도 한몫했다.

 

어느 자치단체고 이 자치단체의 국회의원, 단체장이 국가 예산을 이 지역에 끌어왔다고 자랑하는 플래카드를 건다. 국가사업을 자기 지역에 무리하게 유치하고는 국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자치단체만이 아니라 중앙정부 자신도 이 일에 공범이 되어있고 대개 그 주범은 대통령이다. 문재인은 총선 며칠 전 부산을 방문해 신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각종의 보조금, 지원금, 그리고 감면 제도가 이용된다. 또 지방 유권자를 유혹하기 위해 대통령들은 온갖 사업에서 예비타당성(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한껏 남용한다. 득을 본 자치단체는 감격한다. 지방 자치가 아니라 구걸 자치다. 그 플래카드로 단체장에게 표를 던진다면 당신은 자신이 자유 시민의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저자는 지방자치의 이론적 기반으로, ‘보충성 원리’라는 법철학적 측면과, 오우츠의 ‘분권화 정리’와 티부의 ‘발로 하는 투표’를 누구라도 이해할 만큼 쉽게 제시한다. 그리고 ‘자치’를 ‘분권’으로 이해하고 투쟁 분권에서 자유 분권으로 변모할 것을 주장한다. 이때 분권은 지역의 민주화•자유화에 대한 기반이 된다. 저자가 경험을 통해 확신 있게 제시하는 신선한 제안은 제5장 이하 부분이다. 현실에서 얻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6장에서는 분권을 반대하는 현재의 여러 논리를 수집한 뒤 이들에게 간명하게 반박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를 우파인 당신은 어떤 간결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나? ‘재정자립도’라는 지표가 왜 잘못된 것일까? 분권과 관련해 우리가 친숙해 있지만 많은 점에서 착각해 온 점들을 지적해 준다. 술술 읽히는 구어체 문장이다. 마지막 부분인 8장에서는 이 분권이 어떻게 지역개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실제 사례들로 생생히 보여준다. 마곡 지역의 개발은 누가 했을까?

 

저자는 저명한 재정학자로 자유기업원장, 국회도서관장, 강원발전연구원장 등을 두루 겪으며 국정을 자유, 지식, 지방 발전으로 보는 식견을 쌓아왔다. 이번에 낸 책은 지방자치에 관한 우파 진영이 포용할 많은 새 관점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우파적 지방자치 방향을 모두 모으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개별 프로그램 이전에 지방자치를 실제로 겪은 경험을 통해 지방자치를 분권, 나아가 자유 분권으로 전개하는 관점을 통해 기존의 서적과는 판이한 신선한 내용을 보여준다.

 

우파가 승리하는 길은 지금부터라도 당면 임기응변적이고 몰이념적 이합집산에 매이기보다 개인의 자유민주•시장경제•안보라는 보수 이념에 부합하는 정책 대안을 분야별로 착실히 개발하고 누적해 가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정책과 이념이 없는 낭인을 급히 불러 승리하려 함은 자멸적 행위며, 이념과 정책이 먼저 있고 그것이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가는 방식이 정석이다. 지방자치는 좌파 진영도 환영하는 이슈다. 그들로선 공동체주의를 학습하는 정치 훈련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파는 그와 차별되는 어떤 방향으로 지방자치의 큰 시각을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런 논의가 있기는 했을까?

* 김행범 교수(정치/외교학자)

  - 서울대학교 박사, 조지메이슨대 공공선택연구소 객원교수, 부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