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거점 국립대학들에 3천 5백억씩 돈 나눠주는 정책은 교육부가 판을 짠, 공공선택학에서 지적하는 거대한 '지대추구(rent seeking)'의 적나라한 예다. 일차로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 3개 대학이 그 선정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잘못된 정책임은 돈 나눠주면 곧 서울대 9개가 더 만들어진다는 근본 전제가 틀려먹었다는 것, 그리고 이에 선정되기 위한 지대추구 비용 속에는 이 정권에 잘 맞추도록 만드는 굴종 비용도 포함되고, 연구와 교육이란 양대 본질보다 이 정책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상당 부분의 지력과 자원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1차 선정에 어느 학교가 빠졌다고 혹은 포함되었다고 싸우는 건 이 정책의 근본 오류를 몰각한 채 잘못된 정책 구조 안의 세부 자잘한 경쟁 국면에 초점이 묶여버린 것이다. 배급품을 왜 내게는 안 준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이 배급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먼저 분명히 강조해야 한다. 심지어 이 정책 초기 논의 단계에서는 예컨대 "서울대학교 OO캠퍼스" 식으로 전국에 10개의 서울대학교를 만드는 거라는 논의도 있었다가 그후 각 교명은 현재 교명을 유지하기로 정해졌다.
유대ㅡ기독교 관념 세계에서 3의 의미는 각별하다. 찬송가 8장이 아름답게 그리는 삼위일체(Trinity)는 인간을 구속하고자 고안한 하향식 교리가 아니라 미몽의 인간이 말씀을 통해 신의 속성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체득하게 되는 귀납 논리다. 그 후, 서구 세계는 세 원소로 한 집합을 만드는 사고에 친숙해졌다. 좌파 지식인들이 규정하는 리버테리언(자유주의자) 3악당은 미제스, 하이에크, 뷰캐넌. 뒤마의 3총사는 아토스, 포르투스, 아라미스. 한국 좌3통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한국 정치 3대 배신자에 대한 AI의 답은 보수 진영의 판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 이 바람에 잠시 한숨을 놓은 김민새는 곧 4원소 집합을 두려워할 듯하다. 지금 트럼프 진영은 영국이 임명한 외무장관에 강하게 반발 중이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노동당 총리 밑에서 외무장관 노릇을 한 사람이 데이비드 밀리밴드. 그는 2010년 노동당의 대표 경쟁에서 그의 동생 에드 밀리밴드와 노동당 당권을 놓고 형제의 경쟁을 벌였다. 형 데이비드는 중도 좌파 노선을, 동생 에드는 노골적인 좌파를 지향했는데 예상 밖으로 동생이 승리해 노동당 대표가 되자 형은 서서히 관심
본래 정성호가 밝힌 사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검찰의 보완 수사권 전면 폐지가 형사사법 체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음에도 당내의 강성 혁명군들이 이를 묵살하자 주무장관인 그가 ‘유감, 무력감, 항의’ 중 하나를 시위한 것이다. 형소법 개악 직후, 그는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진짜 너무 걱정된다. 뒷감당을 어찌하려고”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건강상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째 문제는 첫째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니, 결국 정성호의 사퇴는 첫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정성호의 만만찮은 찻잔 속 소동에 입법 만능주의의 정점에서 이재명이 어찌 대응할지가 아주 궁금했다. 청와대 강유정은 오늘 “건강 악화로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정 장관의 사의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핵심인 첫째 사유는 전혀 언급 없이 건강이 나빠 사임한 것으로만 둘러댔다. 해명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번에 개악된 형소법은 수년 안에 반드시 회복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차기 대권의 좌파측 주자가 이걸 먼저 들고나올 수도 있다. 배신의 철새들은 좌측 혹은 우측의 뒤통수를 가리지 않고 치는 버릇이 있
대법원장 조희대는 이재명의 허위 사실 공표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2025.5)에서 2심의 선고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이미 ‘자기 판결’의 선례마저 있는 마당에 그 절차를 피하고 ‘파기환송’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만악의 화근이었다. 대법원장 역시 법관 특유의 소심하고 연약하며 겁 많은 사법 관료의 버릇을 공유한다. 분명한 건, 만약 여야 상황이 반대였고, 좌파 대법원장 체제였다면, 설령 선례가 없었더라도 새 판례를 만들면서까지 자판 방식으로 국힘 대통령 후보는 끝장났을 것이다. 그러나, 조희대에 대한 회한에 머물 수 없고 현 상황에서 앞을 보아야 한다. 조희대의 영세한 처신이 전혀 무용한 것만은 아니다. 파기환송 절차로나마 분명 유죄 취지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재명은 그 후 지금까지 어색한 여유 이면에 자신의 5개 재판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국정의 으뜸 순위를 오직 자신의 재판 모면에 두게 되었다. 형소법 개정이란 무리수도 자신에 대한 공소기각을 얻고자 나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상외로, 이재명은 조희대로 크게 고통받고 있다. 지금은 그 조희대와 대법원을 지킬 때다. 이재명이 삼전과 닉전을 우그러뜨려 만든 ‘호남
‘오디세이’가 영화로 나온다며 미국 영화 감독이 인구 대비 영화 관람자가 세계적으로 많은 한국에 홍보하러 왔고 TV 뉴스마저 요란하다. 그 고전의 여러 번역본 홍보 경쟁도 치열하다. 어느 번역본이든 무방하다. 완독한 후 모든 독자는 번역자를 넘어 아예 새 작가가 되어 새 오디세이를 쓰게 되어 있기 때문. 관념을 떠나 유형의 공간에 고착되는 순간 우리 의식 속 호머의 고전은 쪼그라들지 않을까? 수십 년간 서울-부산을 매주 오가는 오디세이로 자처하며, 항공기에서 내려다보는 한국 지리에 익숙해진 후 “Utis(Ithaca)”를 가끔 필명으로 써 왔다. Utis(그리스어 Οὖτις)는 우리 발음으로는 [우: 티스] 쯤이고 nobody란 뜻. 한국어에는 nobody의 번역어가 없다는 약점 때문에 그 단어를 직접 번역하지 못하고 애먼 동사나 형용사를 부정하는 편법을 쓴다. 숫자에 0(zero)이란 개념이 없는 상태와 비견할 수 있다. 영미인도 ‘부존재’를 가리키는 저 단어가 쉽지 않다. ‘공(空)에 감사하라’(Thank for nothingness)는 불교 고승의 가르침을 젊은 미국 불제자는 아무것에도 고마워하지 말라고 깨닫는다는 영어식 불교 유머가 그래서 나오고. 오
군미필 대통령이 방위 출신 국방부장관에게 육사 폐교를 시사하는 조치를 속히 취하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전국 TV에 방영되었다. 여야가 국방위 심의를 거쳐 정한 장성의 절반쯤이 육사 출신인게 무슨 대역죄라도 되나. 특정 지멱이나 운동권의 정치 독식은 괜찮나. 빈 총 든 군인이 최전방에 허수아비로 서 있는 것보다 오로지 육사 와해가 더 중요한 자는 국군통수권자 자격이 없다. 이재명은 부동산 투자로 수십억을 벌어도 세금을 거의 안 낸다며 징벌적 세금 폭탄의 세제를 예고했다. 또 최근 2배 레버리지 ETF 등 고위험상품 허용으로 증권시장을 투기판으로 몰고갔다는 비판도 면할 수없다. 그러나, 진정한 부동산 횡재의 장본인은 수십년 집 한 채 보유해 온 국민이 아니라 대장동 개발의 대장 및 그 졸개들 아닌가. 그는 혁명과 쿠데타도 분별하지 못하는 자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고 역사가 되며, 실패한 민란은 아무리 고아하게 추켜세운들 한 때의 악법으로 보호되는 임시 우상일 뿐. 제대로 법치주의가 작동했다면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었던 자는 대한민국 역사의 선대가 직면했던 필연적 조건과 상황을 희롱할 자격이 없다. 로마의 독재관 술라는 직권 남용 등으로 기소되는걸 벗어나고자 자
하이에크는 법이 특정 이익에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법의 지배가 ‘형식적(formal) 법치’일 것을 강조했다. 형식적이라는 의미는 껍데기라는 뜻이 아니라 특정 개인, 정파, 계층 등에 실질적으로 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임스 뷰캐넌도 같은 맥락에서 규칙은 ‘일반성(generality)’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위 규범일수록 이 요구는 더 필요하다. 그것들은 법(입법 legislation과 구분되는 law)의 평등성이 요구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비유하자면, 여섯 면이 고른 주사위와 같은 일반성을보장 못한다면 바른 제도로서의 의미가 없다. 경찰이 형소법 체계의 주인이 되게 하려는 황당한 짓을 이재명이 작당하는 이유는 보수층이 모두 눈치챘다고 여겼다가, 과연 그렇게 잘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현재 이재명 사건은 기소중지 상태다. 형소법 개악안은 겉으로는 검찰권 남용 방지라는 핑계를 들지만, 그것은 먼 이유일 뿐이고 이재명 재판과 직결된다. 이 경우 검찰 수사에 절차적 위법이 있었다는 이유로도 공소를 기각할 수 있고, 이재명을 탄압하기 위한 검찰의 기소권 남용으로 판단하여 공소를 기각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여권
이재명 정부 산업정책의 압권은 소위 반도체 클러스터로 각인될 것이다. 언뜻 보면 몇몇 분야를 수도권 및 영남에도 배분하는 구색을 띠지만 이미 세계 정상급 완성 업종으로 당장 큰 수익을 내고 있는 반도체 분야를 자신의 정치 기반인 지역으로 기업체를 끌고 간다. 과거 다른 정부에서 이런 식의 지역 배분을 했더라면 정경 유착이라고 반발했을 짓이다. 결국 이런 식인가? “고개(嶺) 남쪽으로 가면 정경 유착, 호수(湖) 남녘으로 가면 지역 균형 발전”. 기업의 입지 선택을 왜 정권이 정하나. 자주 내세우던 정의와 민주도 결국 돈 끌고 가는 도구였나? 문재인은 이재용을 감옥에 집어넣어 가며 길들이기를 실시하더니, 이제 이재명은 그 기반 위에 만인이 보는 앞에서 감옥만큼이나 위협적인 공개적인 큰 절로 이재용을 그들의 정치 기반이 호남에 거액을 뿌리도록 끌고 갔다. 최적 입지의 선택은 기업 자신이 정해야 하며 대통령의 쇼맨십 같은 공개 큰절로 강요해 가는 건 경제 자유의 침해다. 이런 아이디어 준 소위 경제 참모들의 머리는 저 고향 일방으로만 작동하는 반도체(半導體) 두뇌. 영남 호남도, 수도와 지방도 말고, 기업이 스스로 정하게 하라. 한국의 반도체가 무에서 출발해 세계
노르웨이는 좋은 축구팀이었고 세계 최강의 팀 일원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플레이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이었다. 노르웨이팀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탁월한 축구팀이라는 국면이며, 존경의 대상도 거기까지다. 플레이 자체를 떠난 그 팀의 다른 이야기들은 큰 우려도 준다. 스포츠를 정치화하는 순간 그것은 답이 없는 논쟁으로 끌고 간다. 월드컵이 끝난 후 노르웨이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이스라엘을 국제 스포츠 연맹에서 축출하려는 추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무리들은 이런 노르웨이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노르웨이 축구팀이 정치적으로 선-악을 구분하는 국제 정치에서 특정 노선의 선전 역할까지 자임하는 순간, 그것은 특별한 정치 이념에 편향된 모습을 불편하게 노출하게 된다. 그들은 애써 ‘인도주의적’이라는 명분으로 이스라엘에 테러를 가한 지역을 지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연출하지만, 교전 당사국 중 어느 일방에만 도움을 주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진정한 인도주의라고 평가받기 어렵다. 노르웨이가 비난해 온 이스라엘은 노르웨이가 기울어져 있는 팔레스타인만큼이나 자신의 방어 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팀이 올림
군미필자가 군 최고통수권자, 방위 출신으로 탈영 의혹을 받는 자가 국방장관. 사관학교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질만하다. 나라 간성 양성하는 사관학교마저 지방으로 이전해주고 표 얻는 공기업 하나쯤으로 농단하기 전에 자신의 의혹부터 밝혀라. 국방부 장관이 자신의 탈영 의혹에 대해 병역 자료로 해명하지 않고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며 은폐한다면 갈 데까지 간 것. 우리가 뭘 "오해"할지 알려달라. 비례원칙 떠들던 정권이 그게 무슨 대단한 국가안보 자료라고 숨기나. 저런 장관을 어느 군인이 따르겠나. 모든 군인이 탈영하여 국방 장관을 거부하기 전에 즉각 해명 혹은 물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