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3일 밤, 서울서부지방법원 영장전담 재판부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원로목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적용된 혐의는 지난해 1월 19일 발생한 서부지법 사태의 배후 선동이었다. 그러나 영장 발부의 근거로 제시된 것은 구체적인 지시나 실행 행위가 아니라 발언의 해석과 영향력에 대한 평가였다. 법원이 든 사유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였지만, 그 실질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형사사법에서 구속은 가장 강력한 예외적 조치다. 이미 관련 자료가 확보됐고 수사에 응해왔으며 공개 활동을 지속해 온 고령의 종교 지도자에게 도주 가능성을 적용한 판단은, 법리보다 결론이 앞선 결정에 가깝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는지를 이유로 신병을 확보했다면, 이는 범죄 판단이 아니라 사상과 발언에 대한 처벌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개인의 일탈 여부가 아니다. 형사사법의 기준이 행위에서 발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석이 증거를 대체하고 영향력이 범죄의 근거가 되는 순간, 법치는 정치적 판단에 종속된다. 이는 민주사회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전광훈 사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구속된 손현보 목사를 둘러싼 구속 수사와 과도한 감시 논란, 고병찬 목사의 파주 운정참존교회를 대상으로 제기된 강압 수사 비판,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은평갑을 지역위원회가 심하보 목사가 이끄는 은평제일교회를 ‘극우 선동 교회’로 규정하며 15일 규탄대회를 예고한 장면까지, 종교가 사법과 정치 권력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호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사법이 정치의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정치권이 먼저 낙인을 찍고 공개 규탄에 나서는 상황은, 사법 판단이 정치적 선언에 종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법이 스스로 기준을 세우지 못하는 순간, 법정은 판단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프레임을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가스라이팅’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처벌의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가스라이팅은 심리학적 개념일 뿐, 형법상 구성요건과 처벌 기준이 명확한 범죄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발언의 의도와 영향력을 문제 삼아 이를 처벌의 근거로 삼는다면,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종교인의 설교든, 정치인의 발언이든, 시민단체의 정부 비판이든, 권력이 불편해하는 목소리는 모두 범죄화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행위와 증거가 아니라 해석과 평가가 처벌의 기준이 되는 순간, 비판과 범죄의 경계는 법이 아니라 권력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이 방식은 독재 정권에서 반복돼 온 통치의 전형이다. 사법이 그 흐름을 막는 방파제가 되지 못할 때, 영장은 처벌이 아니라 경고가 되고 구속은 침묵을 강요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이 공포정치다.
법은 해석으로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증거로 판단하고 행위로 책임을 묻는다. 이번 전광훈 목사의 구속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비판의 자유까지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 공포의 다음 대상은 누구인가.
[기고 - 박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