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는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 10여 분 만에 “의제와 무관한 발언”을 이유로 마이크를 두 차례 끊고 정회를 선언했다. 필리버스터 도중 발언권이 의장에 의해 강제로 차단된 것은 1963년 이후 61년 만이다. 국회가 토론의 장이 아니라 권력 의지가 관철되는 장소로 변한 순간이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다수의 폭주를 막기 위해 갖는 마지막 권리다. 한국 국회도 오랫동안 그 취지를 존중하며 발언의 폭을 넓게 인정해 왔다.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소설과 시, 광고 음악 개사까지 낭독했을 때, 당시 국회 부의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의제 내·외의 구분은 없다”며 허용했다. 그런 민주당이 이번엔 정반대로 야당의 입을 서둘러 틀어막았다. 제도의 취지와 자신들의 전례를 부정한 선택적 기준이라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강행 처리가 아니라, 공산주의·전체주의 체제에서나 볼 법한 방식의 권력 운영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절차는 뒷전으로 밀리고 권력의 목표만 앞세우며, 이견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토론을 최소화한 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형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배 체제가 보이는 작동 방식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폭거라며, 민주당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상황은 여당의 폭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폭주를 막아내지 못하는 야당의 구조적 무력함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주당은 장외 시민단체와 사회운동 조직, 여론 네트워크까지 촘촘히 결집해 이미 전면적 정치전에 돌입한 지 오래다. 그들의 방식은 설득이 아니라 관철, 정치가 아니라 장악, 토론이 아니라 힘의 논리다. 반면 국민의힘은 제도적 협상과 절차적 대응이라는 낡은 정치 규칙 속에 머물러 있으며, 스스로의 지지 기반까지 전력화하지 못한 채 외곽에 세워두고 있다. 상대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혼자 정치의 문법만 고수한다면, 싸움은 시작도 전에 패배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12월 9일의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밀려났는지를 보여주는 적색 경고등이다. 동시에 야당에게도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전체주의적 속도로 밀어붙이는 권력 앞에서 언제까지 관성적 정치, 절차적 항의라는 안전한 울타리에만 머물 것인가. 싸움의 방식이 바뀌었는데 전략을 바꾸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것은 정파의 힘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판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을 마련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