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임신중지 약물 도입 추진을 둘러싸고 생명윤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36주 태아 사건’에서 산모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와 시민 5,466명이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70여 개 단체로 구성된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과 서명인들은 22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항소심이 산모의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지나치게 좁게 판단했다며 법리와 사실관계를 다시 엄정하게 심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9월 4일부터 서명운동을 진행해 왔으며 현재도 서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산모 권모 씨와 병원장 윤모 씨, 집도의 심모 씨 등이 살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지난 7월 23일 산모 권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던 1심을 뒤집고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병원장과 집도의에 대해서는 모체 밖으로 살아서 나온 태아를 사망하게 한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은 권씨가 태아가 사산된 상태로 배출될 것으로 알고 있었을 뿐, 살아서 모체 밖으로 나온 뒤 의료진에 의해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정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브로커로부터 사산돼 나온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던 점과 수술 후 회복 과정 등이 담긴 영상을 공개 채널에 게시한 점 등도 판단 근거가 됐다.
이에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 측은 탄원서에서 항소심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지나치게 좁게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핵심 쟁점이 산모가 의료진의 구체적인 살해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의뢰한 임신중지로 살아 있는 태아의 생명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감수했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특히 산모가 임신 36주라는 사실과 태아의 건강상태를 알고 있었고, 앞서 두 곳의 산부인과에 임신중지를 문의한 뒤 다른 경로를 통해 수술을 진행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로커로부터 ‘사산된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산된다’는 말을 믿었다는 것과 태아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반박했다.
탄원인들은 일반인에게 ‘사산’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태아가 모체 안에서 먼저 사망한 뒤 배출된다는 의학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산모가 자궁 내 사망과 모체 밖 사망의 형법적 차이까지 알고 있었는지를 사실상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항소심이 권씨의 유튜브 영상 공개를 고의를 부정하는 정황 중 하나로 본 데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영상 공개가 태아의 사망 과정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사라져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탄원인들은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임신 36주’라는 객관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신 주수와 태아의 건강상태에 대한 사전 인식, 의료기관을 찾아간 과정과 수술을 추진한 경위, 수술 전후의 언행 등을 전체적으로 살펴 미필적 고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임신중지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모체 밖으로 살아서 나온 생명에 대한 형법상 보호 문제는 구별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1심은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점에 모체 밖으로 배출돼 ‘살아있는 사람’이 된 이후의 행위는 낙태죄의 효력 여부와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과 서명인들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객관적인 사실관계에서 도출되는 합리적인 추론까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36주에 이른 살아 있는 태아의 생명은 결코 가볍게 취급돼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이 사건의 법리와 사실관계를 다시 엄정하게 심리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생명존중 가치 확산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서명운동에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