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국가교육위원회의 대입제도 의견수렴과 학교시민교육 기본원칙, 중·고교 역사 교육과정 변경 추진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제기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대입과 교육과정을 서둘러 손질할 경우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13일 ‘대입제도 관련 의견수렴 계획안’,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 ‘중·고등학교 역사 관련 교육과정 수립·변경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회장 강주호)는 14일 입장을 내고 대입제도 개편부터 학교시민교육, 역사 교육과정 변경, 고교 선택과목 신설에 이르기까지 주요 쟁점에 대한 재검토와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수능 서·논술형·절대평가, 답 정해놓은 논의 안 돼”
교총은 우선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해 수능 서·논술형 도입과 절대평가 전환 등이 사실상 주요 개편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교총은 “국교위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수능 서·논술형 도입, 절대평가 전환을 골자로 한 대입제도 개편 추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대입 개편이 가져올 교육·사회적 파장과 학생·학부모·교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중하고 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의견수렴 과정 자체가 특정 방향을 전제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교위 일부 위원들조차 대입제도 개편 과정을 사후 보고받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 교총의 설명이다.
교총은 “사후통보식으로 수능 서·논술형, 절대평가 전환 등 대입 개편 방향의 답을 정해놓은 찬성자 위주의 논의 구조로는 학생·학부모·교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이른바 ‘답정너’식 의견수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 개편 논란이 되풀이되면서 학교와 학부모의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편의 기대효과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부담을 지게 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교육 원칙에 “논쟁적 사안 기준 불명확…교사 민원 떠안을 수도”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에 대해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원 보호 장치가 핵심 쟁점으로 제시됐다.
교총은 이번 원칙이 교과수업뿐 아니라 비교과 활동과 생활지도, 상담 등 학교생활 전반에 적용되고, 시의성 있는 공적 사안을 교육에 적극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학교에서 다룰 경우 무엇을 ‘논쟁적 사안’으로 볼 것인지, 어디까지 교육해야 하는지, 서로 다른 관점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무엇이 논쟁적 사안인지, 어느 범위까지 명확하게 교육해야 할 사안인지, 어떤 관점을 균형 있게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면 교사가 정치적 논란과 민원의 한가운데 놓일 우려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시민교육의 취지 자체보다 이를 실제 교실에 적용할 때 필요한 안전장치가 충분한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총은 향후 관련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 제정이 추진될 가능성도 거론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의 구체적 기준과 논쟁적 사안에 대한 수업 가이드라인, 민원·분쟁 발생 시 교사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같은 장치 없이 선언적인 원칙만 제시할 경우 학교가 오히려 사회·정치적 갈등이 충돌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근현대사 확대에 “분량보다 중3 2학기 파행부터 바로잡아야”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 변경 계획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교총은 중학교 역사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확대할 경우 중·고교 역사교육의 계열성이 약화되고, 근현대사의 반복 학습이 늘어나는 대신 전근대사 학습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제기되는 중학생들의 근현대사 학습 부족 문제가 단순히 교육과정상 분량이 적어서 발생한 것인지부터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고입 준비 등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교육과정 후반부에 배치된 근현대사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면, 역사 교육과정의 분량을 다시 조정하기에 앞서 학사 운영부터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총은 “교육과정 후반부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근현대사 분량을 늘리는 것은 원인은 외면하고 교육과정만 고치는 현장과 괴리된 처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정착도 전인데 또 손질”
국가교육과정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문제도 제기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아직 모든 학교급과 학년에 완전히 적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특정 시대나 영역의 비중을 조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것이다.
교총은 정권이나 사회적 관심사가 달라질 때마다 특정 시대나 영역의 비중을 확대·축소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변경한다면 국가교육과정의 정치적 중립성과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과정은 한 번 바뀌면 교과서 개발과 교원 연수, 수업 준비, 평가체제 등 학교 현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잦은 변경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교총은 이번 심의·의결 과정에서 자신들이 제시한 일부 요구가 반영됐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장의 근본적인 우려를 충분히 해소했다고 볼 수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고교 선택과목 신설도 제동…“교원 수급 현실부터 살펴야”
고등학교 선택과목 신설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했다.
교총은 미디어 문해력과 비판적 정보 수용 역량을 기르는 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 학교가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다과목 지도와 선택과목 개설, 교원 수급 문제 등으로 이미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교육적 필요가 제기될 때마다 별도의 과목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경우 학교가 실제로 해당 과목을 개설하고 담당 교사를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교총은 “새로운 과목을 만드는 것이 ‘일을 하고 있다’는 식의 정책적 성과로 포장하는 행정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과목 신설 자체보다 학교 현장의 운영 가능성과 교육적 실효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과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중장기 국가교육정책과 안정적인 국가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한 기구”라며 “충분한 검증과 사회적 합의 없이 논쟁점이 큰 사안들을 서둘러 확정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대입제도 개편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교위가 ‘속도 조절’과 ‘균형된 의견 반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교육정책 수립 과정에서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앞서지 않도록 ‘AI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