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가 영화로 나온다며 미국 영화 감독이 인구 대비 영화 관람자가 세계적으로 많은 한국에 홍보하러 왔고 TV 뉴스마저 요란하다. 그 고전의 여러 번역본 홍보 경쟁도 치열하다. 어느 번역본이든 무방하다. 완독한 후 모든 독자는 번역자를 넘어 아예 새 작가가 되어 새 오디세이를 쓰게 되어 있기 때문. 관념을 떠나 유형의 공간에 고착되는 순간 우리 의식 속 호머의 고전은 쪼그라들지 않을까?
수십 년간 서울-부산을 매주 오가는 오디세이로 자처하며, 항공기에서 내려다보는 한국 지리에 익숙해진 후 “Utis(Ithaca)”를 가끔 필명으로 써 왔다. Utis(그리스어 Οὖτις)는 우리 발음으로는 [우: 티스] 쯤이고 nobody란 뜻. 한국어에는 nobody의 번역어가 없다는 약점 때문에 그 단어를 직접 번역하지 못하고 애먼 동사나 형용사를 부정하는 편법을 쓴다. 숫자에 0(zero)이란 개념이 없는 상태와 비견할 수 있다. 영미인도 ‘부존재’를 가리키는 저 단어가 쉽지 않다. ‘공(空)에 감사하라’(Thank for nothingness)는 불교 고승의 가르침을 젊은 미국 불제자는 아무것에도 고마워하지 말라고 깨닫는다는 영어식 불교 유머가 그래서 나오고.
오디세이는 자신의 이름을 묻는 키클롭스에게 Utis라 가르쳐 준다. 교만이었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처럼 자신을 추적할 빵가루를 남겨주고 싶었겠지만, 무지한 괴물에게 자신의 지혜로움을 과시하고 싶어서 위험스러울 정도로 힌트를 많이 주었다. 야만의 거인이 [우-티스]를 주의 깊게 몇 번 발음하다 비슷한 소리를 통해 마침내 [오디세이]라는 실명까지 알아낼 지혜는 없을 것으로 자신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한 단계. 그의 지적 우월감은 더 나아가고 막판에는 아예 저 본명까지 고스란히 떠벌여버린다. 그 교만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오디세이가 튀르키에 트로이를 떠난 후 길어야 몇 달 걸릴 곳을 10년이나 걸려 돌고 돌아간 경제학적 이유? 트로이 전쟁이 끝난 세상에서 이제 실업자가 될 그의 부하들이 작품 속에서 군인으로 계속 등장하게 만들어 작가 호머에게서 출연료를 오래 받게 해 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오늘날 지중해에서 호머 이야기를 찾는 건 세상 바뀐 줄 모르는 거다. ‘헬렌’은 지중해를 떠나 미국 일리노이주 스파르타(Sparta)에서 남편 메넬라오스와 연금으로 살다가 남편 사후에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 안에 쉬고 있고, 이타카의 집을 지키던 아내 ‘페넬로페’는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가 되었고, ‘오디세이’ 본인도 지중해를 떠나 한때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 밑에서 ‘율리시즈’로 개명해 알바 노릇을 하다 미국으로 가《2001: A Space Odyssey》에서 배 대신 우주선을 몰았다. ‘칼립소’는 존 덴버의 노래집 안으로 들어갔고, ‘사이렌’은 여자아이 이름이 되고, ‘키클롭스’들도 몬태나와 알래스카 등으로 이민을 갔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트로이-이타카 두 도시. 두 도시 통째로 미국 뉴욕 주로 옮겨갔다. 273km 거리에 이 도시는 10년이 아니라 3시간이면 도착한다.
한국 대중이 이 삭막한 현실을 모른 채 EBS의 지중해식 오디세이 서사로 먹고사는 인문학자들 과장에 아직 빠져있음에 크게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달러를 단단히 훑어가고자 왔다. IMF 위기 때 달러보유고 높이자며 집안의 금을 내놓은 바로 그 해, ‘타이타닉’ 수입에 기꺼이 거액 달러를 던진 난해한 영화민국 대중.
*2026.08.10. Utis(Itha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