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로 가 승려 생활을 하던 롭가 랑젠(Lobga Rangzen)은 미국으로 건너가 택시 운전 등을 하며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해 왔다. 중국이 2026년 7월 1일부터 강행하는 소위 ‘민족단결촉진법’은 중국어 사용을 우선시하고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활동을 처벌하는 족쇄다. 랑젠은 7.2일 뉴욕 유엔 건물 앞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다.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한 승려는 첫 사례인 2009년 이후 약 170명에 이른다.
중국은 자국 제조업체의 싼 생산 단가에 맛 들게 하고 중국 관광객 군중을 보내어 주변국 시장에 잠시 활력을 주지만 그 후에는 이 생산자 및 소비자 무리를 주변국 통제의 지렛대로 쓴다. 거기에 더해 공자 학원을 통해 공자 아닌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여기에 주변국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는 소프트 침공인 동북 공정, 서북 공정, 서남 공정 등을 조작하는 ‘변강사공정(邊疆史工程)’(*주변 지역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뜻)을 기획했다. 이게 끝났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이를 견고히 굳히는 단계다.
오늘날 중국은 원, 명, 청 시절부터 이미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였다고 우기지만, 근거가 약하다. 티베트는 당의 전성기 왕인 당 태종조차 문성공주를 티베트 군주 송찬캄포에게 시집 보내어 화친을 맺을(AD 641)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다. 또 AD 736에는 당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정도였다. 원, 명, 청 시절에 티베트는 약해졌지만, 상당한 자율성을 유지했다. 중국이 실질적으로 티베트를 점령한 것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이 보여주듯이 중국 공산군이 티베트를 가혹하게 점령한 1950년이다. 그해는 중국 공산군이 한반도를 침략한 해이기도 하다.
티베트 라마교의 전통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를 인정하고, 판첸 라마가 달라이 라마 환생을 확인한다. 중국은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 중)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인정한 제11대 판첸 라마(게둔 쵸끼 니마)는 1995년 6세 때 중국이 납치한 뒤 행방불명 상태. 중국은 그 자리에 공산당이 임명한 총무원장쯤에 해당하는 승려인 판첸 라마(겔첸 노르부)를 앉혀 놓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 요구에는 중국 공산당의 라마교 탄압에 대한 저항이 들어 있다.
한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중국으로부터 처음 독립한 것은 일본이라는 외력에 의한 것이지만 청일 전쟁 후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 때문이었다. 반세기 후 한국 전쟁으로 북한은 다시 실질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의존 상태로 돌아갔고, 한국은 미국이라는 방패 아래 중국의 간섭없이 전대미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역사상 식민지를 경영한 여러 나라가 있지만 적어도 중국의 속박하에 있던 나라 중 민주주의 학습이나 경제 번영을 이룬 나라가 하나도 없다. 자의든 타의든 친중을 선택한 모든 사례는 공동 번영이 아니라 중국으로 편입이란 결과로 끝났다.
시진핑이 독대해 준 자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는 고려말 원나라 부마가 왕이 되는 것과 똑같은 재앙이다. 친중, 친러, 친북이 아니라 친미가 우리의 유일한 생존 공정이다. 이 엄연한 교훈을 한국의 모든 정권, 정파, 계층, 그리고 지역이 얼마나 공유하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