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이 5일 열렸다. 정부는 이를 관계 복원과 협력 확대의 출발점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뒤 남은 것은 성과가 아니라 공허와 굴욕이다. 정상은 만났지만, 대한민국 외교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이번 회담에서 반복해 확인된 메시지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이었다. 반면 그에 상응하는 우리의 원칙은 보이지 않았다. 주권과 안보, 비핵화라는 핵심 의제 앞에서 정부는 분명한 요구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택했다. 상대의 입장은 또렷해졌지만, 우리의 기준은 희미해졌다. 이것이 과연 대등한 외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쎄쎄 외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불편한 질문을 삼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외교에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해석되고, 반복되면 신호가 된다. 이번 회담에서의 침묵은 원칙의 부재로 읽힐 수밖에 없다.
가장 중대한 안보 현안인 한반도 비핵화 역시 선언적 언급에 머물렀다. 회담 전후로 북한의 군사 도발이 이어지고, 중국이 공식 문서에서 비핵화 관련 표현을 조정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하지 못한 외교는 설득력을 잃는다. 비핵화는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압박과 행동의 문제다.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외교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주권 문제는 더 심각하다. 서해상 불법 구조물 설치와 반복되는 해양 질서 훼손은 더 이상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주권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에서 시정 요구나 철거, 기한을 전제로 한 조치 합의는 확인되지 않았다. ‘건설적 협의’라는 표현만 남겼다. 협의는 결과를 향할 때 의미가 있다. 결과 없는 협의는 사실상 용인에 가깝다.
경제 분야도 다르지 않다. 협력 구상과 양해각서는 나열됐지만, 한한령 문제나 대중 의존 리스크 완화라는 현실적 과제에서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외교 성과는 문서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증명된다. 기업과 산업이 체감하지 못하는 외교는 외교가 아니다.
외교는 유화와 굴종을 구분할 줄 아는 기술이다. 관계를 관리하되 원칙을 분명히 하고, 대화를 하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일이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의 원칙만 선명해졌다면, 그 자체로 균형은 무너진 것이다.
관계 복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국익의 좌표 위에서만 가능하다. 좌표 없는 외교는 표류하고, 표류하는 외교는 결국 상대의 질서에 편입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굽은 허리로는 외교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외교는 감사 인사가 아니라, 국가의 이익으로 말해야 한다.
